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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신세계-이제는 한국 느와르의 교과서, 딱 좋은 영화

by 공간연주자 2022. 1. 28.

 

영화 포스터

세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신세계

이자성(이정재): 정청의 오른팔로 여수에서 건달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입니다. 정청의 신뢰를 받고 있는 그는 뛰어난 실무능력과 추진력으로 '골드문'내에서 인정받는 인재입니다. 조직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라이벌인 '재범파'와의 세력다툼에 큰 역할을 합니다. 본 정체는 사실 경찰로서 강 과장이 당시 신입이었던 이자성을 눈여겨보고 그를 정청의 스파이로 잠입시킨 것입니다. 작중 행적을 보면 매번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주도권을 잡고 무언가 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유가 생기고 여건이 되었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냉혹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경찰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주저하지 않고 장수기, 이중구, 강 과장, 고 국장을 한꺼번에 죽여 없애는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최후에는 어찌 되었든 완전히 조폭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타락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영화 내 분위기나 그가 처한 상황을 보면 단순히 개인적인 욕망으로 타락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강 과장의 배신으로 돌아갈 곳이 없어진 그는 살기 위한 선택의 일환으로 타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형철(최민식): 경찰청 수사기획과장으로 국내 최대 조직폭력집단 골드문을 잡기 위한 경찰 프로젝트 '신세계'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 주인공입니다. 정의를 위해 일하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결코 정의롭지 않습니다. '불친절한 정의'로 정의를 추구하기는 하나 악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가 '신세계'프로젝트를 구상한 이유도 대형 조직폭력집단이 와해되며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정작 민생 치안에는 더욱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대형 조직폭력집단을 경찰의 감시 하에 두기 위해서 입니다. (실제로 멕시코의 마약왕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의 조직이 미국의 공권력에 의해 와해되면서 마약 조직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멕시코 전체가 혼란과 공포에 빠져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경찰이 조폭 수뇌부로 들어가서 조직폭력배들을 장악하고, 어느 정도의 범죄는 눈감아주고 적절한 선에서 관리하며 정치인들과의 유착을 감시하는 것입니다. 권모술수와 전략 구상 및 사람을 보는 안목은 높지만 사람들을 다루는 능력은 상당히 부족합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사람을 관리하지 못해 일을 망치게 됩니다. 이자성을 골드문에 심어놓은 주인공이면서도 그에게 지속적으로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결국은 이자성이 경찰을 포기하고 조직폭력배로서의 길을 선택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결국 그가 고안한 '신세계'프로젝트는 그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입니다. 

정청(황정민): 전 북대문파 두목이자 현 골드문 그룹 전무이사입니다. 공식적으로 조직 내 서열은 3위입니다.(사실 상 서열 2위의 입지) 서열 4위 '이중구'와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별것 없는 시골의 건달이었으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이자성의 보좌를 받아 지금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모든 것이 매우 당당한 인물입니다. 쉴 새 없는 욕설과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성격입니다. 경찰이 조직 내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하여 중국 해커들을 고용하여 경찰청 데이터베이스를 모조리 손에 넣는 과정에서 이자성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이 사실을 숨깁니다. 라이벌 이중구의 지시를 받은 무리들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 보여주는 정청의 잔인함과 실력은 조직 서열 2위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중상을 입은 정청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살리려는 이자성을 걱정하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자성은 경찰의 삶을 포기하고 정청의 뒤를 잇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이 정청이 바라던 '신세계'였을까요? 영화 내에서 매번 실없는 농담을 하며 조직의 보스로서는 가벼운 행동들을 일삼지만, 정작 일이 터지면 소름이 끼칠 만큼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사실상 경찰 강형철의 프로젝트는 정청의 능력을 너무 저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련된 스타일을 위해 희생된 현실성

영화 내내 감독은 느와르 장르의 무거운 분위기와 영화 '신세계'만의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개봉한 지 10여 년이 된 영화이지만 현재까지도 한국 누아르 영화의 교과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스타일을 위해서 많은 현실성을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극 중 주인공 이자성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소로 등장하는 바둑기원은 지나치게 넓고 호화스럽게 묘사됩니다. 이자성 외에는 출입하는 고객이 없는데 운영이 가능할까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또한 극비로 진행되는 장소 치고는 상당히 보안이 허술하게 느껴집니다. 

정청의 라이벌 이중구의 사무실은 공사중인 고층건물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중구의 캐릭터와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서 연출했다지만, 공사장은 실제로 먼지와 소음 등으로 사무공간으로는 부적합한 공간입니다. 실제로 촬영 당시에도 소음이 너무 심해서 대사는 이후에 따로 녹음했다고 합니다. 

강형철의 은둔지인 실내 낚시터 역시 현실과는 괴리가 느껴집니다. 그 장소는 강형철이 정보원들과 은밀히 접선하는 용도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에 굳이 낚시터여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강형철의 아지트를 폐쇄된 실내 낚시터로 표현한 이유는 강형철의 집념(=낚싯대를 던지고 계속 기다리는 행위)과 궁극의 실패(=썩은 물에서는 절대 물고기를 낚을 수 없음)를 관객들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연출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현실성이 가장 떨어지는 포인트는 '신세계'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한 경찰관들을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처리한 데 있습니다. 아무리 영화 내에서 보여지는 조직폭력배들의 모습이 일본 야쿠자들 또는 홍콩 삼합회를 연상시키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고위 경찰관들을 살해한 사건을 국가에서 쉽게 넘길 리가 없습니다. 그것도 대낮에 중국 암살자들에 의해 권총으로 살해당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따라 하고 싶지만 따라갈 수 없는 신세계

영화 신세계의 흥행 이후 한국 누아르 영화는 다시 한번 제2의 '신세계'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많은 모방작들을 탄생시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여 아직 신세계를 잇는 모두가 인정하는 정통 누아르 영화는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과 누아르 영화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영화 '신세계',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와 세련된 BGM, 연출 장면 등은 두 번 세 번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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